Criticism

어느 도시인의 시학 :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의 세계에 진입하는 네 개의 입구

serenobis 2024. 8. 1. 00:47

오랜만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할 분량의 원고를 청탁받고 고민하다가 에드워드 양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독립시대>(1984)의 국내 개봉 소식(8월 21일)을 접했다. 문득 2020년 9,10월호 필로 FILO 16호에 투고한 <공포분자>에 대해 썼던 글이 생각났다. <공포분자>에 대해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쓰기 시작한 글이, 결국 <공포분자>를 중심으로 풀어낸 에드워드 양의 감독론이 되어 편집자를 조금 피곤하게 했던 글이었다. 시간과 공을 꽤 들여썼던 글이라 다시 읽어보고 싶어 책장을 뒤졌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도통 찾을 수 없었다. 폴더를 뒤져 편집자에게 보냈던 첫 글을 찾아 읽었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글의 밀도를 높이려다가 놓친 지점들이 보이긴 하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을 좋아하고, <독립시대>의 개봉을 기다리는 분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편집자의 손을 거쳐 온전히 완성된 글을 읽고 싶은 분들은 아직도 필로 FILO 16호를 판매 중이니 구입해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FILO 필로 (격월) : 9,10월호 [2020] - 예스24 (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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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분자 恐怖分子>, 이 이상한 단어가 낯설어서 도통 이 영화의 제목이 무슨 뜻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면 일단 ‘회색분자’, ‘반동분자’ 같은 냉전 시대에 자주 쓰였던 단어들이나 이 영화의 영문 제목 <Terrorizers>를 떠올려보면 된다. ‘공포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 또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들)’ 정도의 뜻으로 이해되는 어두침침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그래서 공포영화나 호러영화가 아닌가 하고 먼저 생각하게 되는 이 영화는 <하나 그리고 둘>(2000)을 유작으로 남기고 59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후 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 감독이었던 에드워드 양은 총 일곱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그중 <공포분자>(1986)는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특별하고 가장 복잡한 영화다. 누군가 <하나 그리고 둘>을 연출한 감독의 전작이라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이 영화를 본다면 당혹감을 먼저 느낄지도 모르겠다. 일단 영화 자체가 서사적으로나 스타일적인 면에서 복잡하고 특별해서겠지만, 무엇보다 에드워드 양의 대표작인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이나 <하나 그리고 둘>을 물론이고 단 일곱 편으로 이루어진 그의 전체 필모그래피를 이루고 있는 다른 어떤 영화와도 별로 닮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장편데뷔작 <해탄적일천>(1983)에서 두 번째 장편영화 <타이페이 스토리>(1985)로 이어지는 이른바 ‘도시 삼부작 (Urban Trilogy)’을 완결지은 이 영화가, 평생에 걸쳐 도시적인 관점으로 동시대 대만 사회의 내부를 탐색해 온 에드워드 양 감독의 주제 의식과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공포분자>는 그의 전체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에드워드 양의 세계관을 가장 적극적이고 대담하게 담아낸 영화다 보니, 유독 그의 영화들로부터 몇 발짝 떨어져 휑하니 홀로 서 있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에드워드 양 감독이 만든 <공포분자>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것들과 함께 이 영화가 가진 예외적인 특별함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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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2월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건너와 중화민국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당시 대만 땅에는 오래전부터 원주민이었던 본성인(本省人)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이들의 입장에선 어느 날 갑자기 중국 본토에서 피난을 와서 남의 땅에 국가를 세워버린 외지인, 즉 외성인(外省人)들이 당연히 달가울 리 없었다. 본성인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대만의 독립까지 요구하기 시작하자 국민당 정부는 1949년 대만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대만인들은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무려 40여 년간 역사상 가장 긴 군사독재를 경험해야 했다. 계엄령이 해제되자, 오랜 기간 억압되어 있었던 본토인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대만적인 것, 이른바 본토성(本土性)을 확보하고자 애썼다. 1987년을 기점으로 한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민주화 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대만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였다. 거기다가 일본의 식민통치, 2차 세계대전, 1970년대의 어마어마한 경제 성장, 군사독재 시기를 차례로 거치며 근대적인 국민국가로 발전해 온 대만은 이 무렵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빠른 근대화와 도시화, 자본주의가 낳은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함께 겪고 있었다. 대만의 전통적 가치였던 가족의 시대는 개인의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개인주의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양, 차오 테천, 창 이, 코 이천, 4명의 혈기 왕성한 대만의 신인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광음적고사>(1982)와 함께 시작된 대만 뉴웨이브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세상의 모든 새로운 흐름, New Wave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비판과 저항, 분노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전에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리와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새로운’ 흐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만 뉴웨이브에 속한 이들도 그랬다.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고, 후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을 필두로 한 젊은 영화인들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았던 대만 영화가 그동안 담지 않았거나 담지 못했던 대만의 진짜 모습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에 담기 시작했다. 후 샤오시엔이 교외를 배경으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근현대사를 통해 대만 사회의 정체성을 탐구했다면, 에드워드 양은 후 샤오시엔이 관심을 가졌던 ‘본토화 indigenization or Taiwanization’와 관련된 작업보다 타이베이라는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급속한 발전이 낳은 도시화를 비롯한 동시대 대만의 사회 문제와 그 문제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세련된 스타일로 영화에 담아냈다. 

 

그중에서도 동시대 미국 문화의 직접적인 세례를 받은 에드워드 양의 세계는 유독 특별했다. 그의 영화는 인간과 공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련된 영상 언어를 만들어냈고 한발 더 나아가 당대의 시대 분위기마저 영화에 녹여냈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이 걸작이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던 1960년대, 아무렇지 않게 백색 테러가 자행되던 끔찍했던 폭력의 시대를 살았던 한 소년, 그 평범했던 소년이 어처구니없게도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소녀를 살해했던 실제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낸 이 대서사시가 위대했던 건 그 질식할 것 같았던 1960년대 대만, 그 암울했던 시대가 소년의 살인 동기였음을 영화 스스로가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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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양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대만으로 건너왔다. 그의 아버지는 외성인이었다. 에드워드 양의 전체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한 시대극인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의 주인공 샤오쓰의 가족의 모습에는 이렇게 에드워드 양 감독의 가족사가 투영되어 있다. 대만에서 중등교육을 마친 그는 부모의 뜻을 따라 대만의 한 국립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플로리다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과정을 잘 마쳤지만, 자신의 또 다른 꿈이었던 영화를 배우기 위해 박사과정 대신 USC 영화학교를 선택했다. 그러나 주류 상업 영화 중심의 커리큘럼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 재능이 없다고 믿었고 주저 없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곤 다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경학과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설계학과를 가진 하버드디자인대학원에 지원해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결국 등록을 포기했다. 그리고 시애틀의 한 연구소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다. IT 사업을 하는 <하나 그리고 둘>의 주인공 NJ는 그가 잘 알고 있는 세계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시애틀에서의 생활은 안정되고 풍족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우연히 들어간 한 극장에서 본 베르너 헤어조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1972)는 그의 인생을 결국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영화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그는 그로부터 3년 후 대만으로 돌아와 TV 영화에 참여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본격적인 영화 만들기를 시작했다. 

 

종종 ‘도시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하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 세계는 네 번째 장편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을 기점으로 해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앞에서 잠시 언급한 ‘도시 삼부작(Urban Trilogy)’으로 이루어져 있고, 후반부는 <독립시대>(1994)와 <마작>(1996)을 경유하여 결국 자신의 영화 세계를 집대성한 에드워드 양 월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 그리고 둘>(2000)로 마무리되는, 이른바 ‘타이베이 삼부작(Taipei Trilogy)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이후 과거에서 비롯되었거나 과거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인물의 이야기보다 현대적인 도시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도시 중산층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이러니와 우울, 허무함이 공존하는 황폐하지만 모던한 도시로서의 대만의 이면을 담아냈다. 에드워드 양의 거의 모든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사회 비판적이지만 강력한 메시지나 주제 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법은 거의 없다. 그가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시대>에서도 공자의 말씀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이는 전통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기보다 과거와 전통에 대한 감독의 회의와 냉소가 반영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그의 유작인 <하나 그리고 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전체 필모그래피 중 가장 저평가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마작>(1996)에선 달랐다. 이 영화에는 그의 다른 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하고 직접적인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마작>에 등장하는 영국인은 영화가 끝나갈 즈음, 대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기 사람들은 아주 돈독이 올랐어. 엄청 벌어. 있잖아. 10년만 지나면 이곳 타이베이가 세계의 중심이 될 거야. 서구 문명의 미래가 여기 있어. 좀 이상한 건 말이야. 우리는 역사적으로 19세기가 제국주의의 전성기라고 배웠잖아. 두고 봐, 21세기 초에도 마찬가지일 거야.”   

 

이 대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마작>의 바탕에 깔린 전반적인 정서는 동시대 대만 사회와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분노와 냉소, 강력한 비판 의식이다. 이는 살부 殺父 라는 은유적인 설정으로 이어지고, 결국 감독은 돈만 좇던 홍어의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동반자살시키고, 홍어는 탐욕스러운 아버지의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야 만다. 그리고 영화는 의도적으로 과장된 낭만주의와 이상주의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이런 결말 역시 그의 다른 영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면에서 <마작>은 같은 해에 공개된 아오야마 신지의 장편데뷔작이자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살부에 관한 영화 <헬프리스>(1996)를 연상시키는데, 한 발 더 나가보자면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베이 삼부작'이 훨씬 짧은 기간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삼부작이 가진 의미와 주제 의식 면에서 보면 '타이베이 삼부작'은 10년에 걸쳐 일본 사회의 무의식을 탐구했던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기타규슈 삼부작 - <헬프리스>, <유레카>(2000), <새드 베케이션>(2007) - 과도 여러모로 닮아있다. 

 

이에 반해 에드워드 양의 전반부 영화 세계는 후반부와는 상당히 다르다. 1983년 장편 데뷔작 <해탄적일천>를 완성한 후 1985년 <타이페이 스토리>, 1986년 <공포분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도시 삼부작(Urban Trilogy)’을 완성했던 4년의 시간은 그가 자신의 다양한 재능을 영화에 투영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다녔던 도전의 시기였다. 그는 공학자였고, 컴퓨터 시스템 설계 엔지니어였으며, 도시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고, 무엇보다 유럽 예술영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전반기 영화들은 매우 구조적이고, 영화적 형식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으며 각각의 영화마다 미장센과 몽타주가 매우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 세 편의 영화 중에서도 유독 도드라지는 <공포분자>는 그의 첫 번째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그의 세계가 다시 확장하기 직전에 만들어진 가장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이자, 4년 동안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면서 쏟아부은 모든 도전과 실험의 총합인 동시에 에드워드 양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공포분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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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새벽, 조용한 도시의 공기를 가르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날이 밝는다. 두 커플이 각자의 아파트에서 깨어난다. 먼저 젊은 포토그래퍼 커플의 세련된 작은 아파트, 망가져 껍데기만 만든 부부의 세계를 담아낸 마이클 니콜스의 장편데뷔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의 두 주인공 부부의 얼굴이 나오는 커다란 흑백 포스터가 붙어있는 방이다. 가까이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호기심이 생긴 포토그래퍼는 밤새도록 책을 읽다가 막 잠이 든 여자친구를 집에 둔 채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총격전이 벌어져 사망자까지 발생한 범죄 현장을 서성거리다가, 절뚝거리며 도망치는 한 혼혈 소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음은 중년의 소설가 아내와 의사 남편이 사는, 원목 가구들과 화분이 가득한 오래된 아파트,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도통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소설가 아내가 피곤한 표정으로 잠에서 깬다. 의사인 남편은 막 출근하려던 참이다. 남편은 소설가 아내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젊은 포토그래퍼 커플의 이야기와 소설가와 의사 부부의 이야기를 각각 나란히 진행시킨다. 도저히 만날 것 같지 않던 두 개의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건 죽음의 범죄 현장에서 탈출한 혼혈 소녀다. 대만의 어두운 과거와 현실을 은유하는 이 불량소녀는 문제가 있어도 어떻게든 함께 살 수 있었던 두 커플의 서로 다른 세계에 균열을 낸다. 포토그래퍼가 찍은 소녀의 사진 때문에 커플은 심하게 다투게 되고 여자친구는 자살을 시도한다. 한편, 병원에 갔다가 엄마에게 붙잡혀 집에 감금되다시피 한 이 혼혈 소녀는 무작위로 장난 전화를 돌리다가, 우연히 소설가 아내의 집에 전화를 걸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누군지도 모르는 소설가 아내에게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장난을 친다. 이 우연한 장난 전화 한 통은 의미 없는 결혼 생활에 지쳐있던 소설가 아내를 각성시킨다. 오래되어 견고해 보였던 중년 부부의 세계는 이렇게 쩍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공포분자>의 내러티브는 복잡하다. 데뷔작 <해탄적일천>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서사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의 모든 영화 중에서 이렇게 엉켜있는 실뭉치처럼 복잡한 서사를 창의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는 <공포분자>가 유일하다. 청춘과 중년, 예술과 삶, 욕망과 허무, 현대와 전통, 가족과 개인, 소설과 현실, 과거와 현재 등 죽음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던 대만의 다양한 사회적 가치는 미로 같은 이야기 속에서 서로 만나고 충돌했다가 화해하며 각자의 길을 따라 전진한다. 여러 개의 이야기들은 각자의 인과관계를 통해 사방으로 뻗어나가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영화 속 모든 인물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한 소녀로 인해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그리고 영화는 결국 가장 견고할 것 같았던 가부장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무관심으로 소설가 아내를 잃고, 부정한 방법으로 승진을 욕망하다가 결국 모든 걸 잃어버린 중년 의사 남편은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부정에 눈을 감았던, 자기 분열적인 아버지 세대를 은유하고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나 에드워드 양 감독은 끝까지 이 남편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믿는, 병원의 상사와 아내의 내연남을 차례로 처단하고, 그 혼혈 소녀마저 죽이려는 남편의 시도를 담은 판타지 시퀀스를 기어이 그의 자살 장면 앞에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대만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자신의 세 번째 영화에 이식해 낸다. 

 

이제, 이 영화에서 ‘공포분자’는 과연 누구인지 물을 때가 되었다. 도대체 누가 이 멀쩡해 보였던 세계에 균열을 내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가? 대만의 어두운 역사의 산물인 혼혈 소녀가 공포분자라면 이 영화는 너무 단순하고, 위험한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양 감독은 꼬리를 무는 이 연쇄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삶은 우리가 만들어낸 촘촘한 사회 구조와 인간관계 속에서 수많은 타인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감독은 이 영화에서 대만 사회의 ‘공포분자’는 다름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당신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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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은 이 복잡하고 복합적인 내러티브를 영화에 담기 위해 자신의 인장과도 같은 여러 가지 시각적 전략을 창조하고 활용한다. 그의 카메라는 항상 인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그러나 인물을 사각 프레임 안에 가둘 수 있는 거리, 그의 어떤 영화에서든 클로즈업숏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공포분자>에선 롱숏마저도 별로 찾을 수 없다. 이것이 그가 찾아낸 도시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거리다. 그의 이런 거리 감각은, 도시적인 느낌을 영화에 담아내는 그의 탁월한 공간 감각과 함께 그의 모든 영화에서 매우 정교하게 작동한다. 감독은 영화 내내 이런 프레이밍을 통해 도시라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담아냄과 동시에 도시적인 감각까지 시각화해내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특히 감독은 많은 장면에서 인물과 문, 창문, 복도, 현관 등을 프레임 안에 함께 배치함으로써 화면 내에 깊이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결국 일종의 롱숏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에밀리 유에-유 예(Emilie Yueh-Yu Yeh) 와 대럴 윌리엄 데이비스(Darrell William Davis) 같은 영화학자들은 에드워드 양의 이러한 시각적 스타일과 공간 감각을 ‘터널 비전 Tunnel Vision’이라고 불렀다. 이 효과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인물과 함께 당대의 시대 분위기를 영화에 담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그의 확실한 영화적 인장이 되었지만, <공포분자>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에드워드 양은 플롯에서 중요해 보이는 디테일을 종종 생략해 버린다. 그리고 서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영상 조각들을 의도적으로 재배열하고 재배치한다. 마치 퍼즐 조각을 숨기거나 뒤섞어 버리는 것처럼.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서 그 이미지가 생략되고, 예상치 못했던 이미지가 등장하면 관객에겐 자연스럽게 서사에 참여할 수 있는 영화적 공간이 주어지고 서사는 한층 풍성해진다. 물론 이런 생략과 배열의 감각이 매우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은 <공포분자>에서 이런 이미지 전략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이야기 조각들을 하나씩 툭툭 던져놓으며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와 더불어 그는 초기작부터 후시녹음의 특성을 살려 영화의 대사와 사운드를 씬과 씬, 시퀀스와 시퀀스를 연결하여 서사를 진행시키는 영화적 장치로 활용해 왔는데, <공포분자>에서도 이런 사운드에 관한 실험을 쉽게 볼 수 있다.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대만 뉴웨이브 감독 중 가장 소설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서사적인 특성이 강하지만,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영화보다 정교하게 설계된 영상 이미지가 그의 서사를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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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포분자>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온전히 에드워드 양이 창조한 오리지널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정사>(1960)를 모티브로 했다는 장편데뷔작 <해탄적일천>처럼 <공포분자>에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흔적이 어른거린다. 서구평론가들은 종종 그를 ‘오리엔탈 안토니오니’라고 불렀다. <공포분자>의 청년 포토그래퍼는 <욕망>(1966)의 주인공인 프로 포토그래퍼 토마스와 닮아있고 영화가 담고자 하는 정조와 몇몇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일식>(1962)을 떠올리게 한다. 에드워드 양의 세계, 특히 그의 전반부의 영화에는 안토니오니의 모던한 세계로부터 도착한 것이 분명한 흔적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프레데릭 제임슨이 그의 저서 「지정학적 미학」에서 한 챕터를 통째로 할애하여 <공포분자>를 다루었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에 담겨 있는 모던한 스타일과 실험적인 내러티브,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독창적이며 온전히 에드워드 양의 것이다. 1986년 완성되어 공개된 지 약 35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말이다. 물론 <공포분자>가 오즈 야스지로의 유작 <꽁치의 맛>(1962)에서 처럼 미래 도시와 같은 현대적인 도시 풍경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대만의 건조한 도시 풍경 속에서도 정말 마법처럼 당대 대만 사회의 도시적 모던함을 영화에 담아낸다.

 

많은 돈과 많은 사람이 투입되어 완성되는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당대의 풍경을 담아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상당히 많은 영화들은 영화적 유산으로서의 가치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그렇지 않다. 그의 영화는 현재의 시점으로 봐도, 놀랍도록 모던하며, 여전히 동시대적이다. 그가 시대를 앞섰던 것인지, 우리가 사는 시대가 퇴행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떤 시대 변화와 마주하더라도 적어도 에드워드 양의 영화만큼은 앞으로도, 분명히, 계속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마작>과 함께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온 <공포분자>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글. 조지훈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일을 한다. 현재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계간 웹진 <DOCKING>의 편집장으로도 활동 중이다.